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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현양 사업과 시복시성 운동 (상)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8-08-31 12:02:26 | 조회 : 365

가톨릭평화신문 2018.09.02 [1480호]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9. 순교자 현양 사업과 시복시성 운동 (상)


교황의 한국 사랑과 교회의 노력으로 시복 시성 꿈 이뤄 


한국 가톨릭교회는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를 모시고 있다. 모두 순교자들이다. 이들의 시성과 시복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교회사에도 기록될만한 사건이었다.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주례한 103위 시성식은 교황이 지역 교회를 방문해 거행한 역사상 최초의 시성식이었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거행된 124위 시복식은 한국 가톨릭교회가 자력으로 추진해 교황청 시성성에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청원서’를 공식 접수한 후 5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순교자와 순교 신심 현양에 앞장서온 가톨릭평화신문은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의 시복시성 과정을 정리했다.



▲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이 1984년 5월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을 찾아

103위 관련 성화를 축복하고 있다.




103위 순교 성인


한국 교회 103위 순교 성인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한국 교회에 대한 사랑과 배려, 고 김수환 추기경의 노력, 시성성 장관 팔라치니 추기경의 협력 때문이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3년 1월 새 교회법과 시복시성 절차법을 공포했다. 교황은 당시 시성성 장관 팔라치니 추기경에게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 출신 성인을 모실 수 있도록 한다 △평신도 성인을 탄생시켜야 한다 △지역 교회를 도와주는 방향으로 시성 절차가 전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교회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고 시성성 장관에게 특별히 당부했다.

팔라치니 추기경은 한국 주교단에 103위 시성이 진척될 수 있도록 ‘기적 심사 관면’ 청원서를 제출하라며 서류 작성법까지 세세히 알려줬다.

김수환 추기경은 명칭에 교구장 주교를 제쳐놓고 “한국인 신부를 우선시하는 것은 국수주의다”, “수세기에 걸친 교회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하면서 시성 건 명칭 변경과 한국에서의 시성식을 반대하던 시성성 관계자들과 국무원장, 교황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103위 성인의 시복시성 과정은 ‘1839년 기해박해ㆍ1846년 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과 ‘1866년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 이 둘을 합친 103위 복자 시성으로 나뉜다. 두 시복 안건은 파리외방전교회가 추진해 현재 베트남 지역인 통킹과 코친차이나 순교자들과 함께 교황청에 시복 청원이 올라가 재판이 진행됐다.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은 1847년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최양업 부제와 매스트르 신부가 라틴말로 번역 완성한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이 기초가 됐다. 82명의 순교 행적이 담긴 이 책은 파리외방전교회를 거쳐 교황청 예부성성(현 시성성)으로 그해 10월 제출됐고, 예부성성은 1879년 조선 순교자에 대한 시복 수속에 장애 없음을 선포한다. 1921년 추기경 회의에서 시복 후보자 82위 가운데 3위가 증거 불충분으로 제외됐고, 1925년 7월 4일 비오 11세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79위 시복식을 거행했다.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은 1895년 간행된 병인박해 순교자 877명의 전기 「치명일기」를 기초로 1901년 4월 병인박해 순교자 29위에 대한 ‘시복 조사 수속록’을 예부성성에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29위 가운데 3명이 탈락하고 26위에 대해서만 시복 재판이 진행됐다. 이후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한국 주교단이 병인 순교자들의 시복 건을 코친차이나 순교자들의 시복 건과 분리해 추진해 줄 것을 예부성성에 청원해 허락을 받았다. 하느님의 종 26위 가운데 프티니콜라ㆍ푸르티에 신부가 제외되고 24위가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1968년 10월 6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됐다.

한국 주교회의는 1971년 가을 총회에서 시복시성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1976년 한국 순교 복자 79위와 24위를 하나로 묶어 하나의 시성 건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교황청에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시성 대상자들의 기적 검증에 대한 한국 교회의 준비 부족으로 6년 동안 답보 상태로 있다가 ‘기적 심사 관면’을 받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인 1984년에 시성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124위 시복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124위 시복 과정

124위 복자는 103위 순교 성인의 윗세대와 동료들이다. 신유(1801)ㆍ기해(1839)ㆍ병오(1846)ㆍ병인(1866)박해 순교자들이다. 103위 시복시성 때 제외됐던 초기 순교자들이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또 한국 교회가 모든 것을 단독으로 추진한 첫 번째 시복 재판건 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103위 시성식 직후인 1984년 6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김남수 주교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광암 이벽 요한 세자와 그 동료 순교자 및 증거자 97명’의 시복 추진 심사를 선언했다. 그러나 97명 가운데 문제가 있는 이들이 포함돼 있다고 이의가 제기되면서 교구별로 시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주교회의는 1997년 10월 가을 정기총회에서 시복 통합 추진을 결정하고, 이듬해 10월 ‘한국순교자시복시성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시복시성통합추진위는 시복 추진 안건 이름을 잠정적으로 ‘윤지충 바오로와 주문모 야고보 신부와 동료 순교자들’로 정하고 서울 43명, 대구 20명, 수원 18명, 전주 18명, 청주 13명, 마산 5명, 원주 3명, 부산 2명, 제주 1명 등 교구별 시복 청원자 124명을 선정했다. 순교 시기별로는 1800년 이전 15명, 1801년 52명, 1802~1839년 37명, 1866년 이후 20명으로 구분된다.

주교회의는 2002년 봄 정기총회에서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만들고 박정일 주교를 위원장으로, 류한영(청주교구) 신부를 총무로 임명했다. 시복시성주교특위는 2002년 6월 ‘첫 순교자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및 주문모 신부’라는 이름으로 124위 시복 청원을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했다. 이에 시성성은 같은 해 9월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라는 안건으로 시복을 추진하고 예비심사 관할권을 마산교구에 부여했다.

시복시성주교특위는 2004년 5월 124위 시복 안건 착수와 법정 구성 교령을 공포했고, 이후 2009년 6월 교황청 시성성에 시복시성 청원서를 제출하기까지 35차례 시복 재판 법정을 열고, 28차례 현장 조사를 시행했다.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 건은 교황청 시성성 역사ㆍ신학위원회의 심의뿐 아니라 추기경과 주교단의 심의를 통과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16일 이들의 시복을 선포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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