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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33·끝) 마가자에서 선종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12-21 09:29:14 | 조회 : 931

가톨릭평화신문 2017. 12. 25발행 [1445호]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33·끝) 마가자에서 선종


조선 복음화의 꿈 이루지 못한 채 주님 곁으로





▲ 중국 마가자성당 묘역에 있는 브뤼기에르 주교 무덤. 기록대로 언덕 기슭 중앙에 주교 무덤이 있다.


▲ 서울 개포동본당 신자들이 마가자성당 구내에 세운 브뤼기에르 주교 현양비.



▲ 마가자성당 정문. 마가자성당은 몇해 전 화재로 소실돼 강당에서 전례를 하고 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5년 10월 7일 중국 서만자(西灣子)를 출발했다. 날씨는 얼음장같이 추웠다. 추운 만큼 위험을 덜 수 있다고 주교는 생각했다. 하지만 주교는 이 여정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겪은 것보다 더 큰 위험일 것이라 직감했다. 길을 나서기에 앞서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총장 랑글루아 신부에게 편지를 써 “앵베르 신부를 조선대목구장 서리나 부주교로 삼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저는 조선 선교지를 모든 점에서 사천(四川) 선교지 수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볼 때 이를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기에 적합한 사람은 앵베르 신부뿐입니다.”(브뤼기에르 주교가 1835년 10월 2일 서만자에서 랑글루아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독한 추위에 병 악화

브뤼기에르 주교는 서만자에서 박해를 피해 토굴 생활을 하면서부터 심한 두통을 앓았다. 서만자를 떠나기 2~3일 전부터 두통이 악화돼 구토까지 했다. 계획대로 10월 7일 출발했으나 그날 저녁 다시 몸이 아프기 시작해 오호(五號) 마을 신자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지독한 추위가 주교의 병을 더 악화시킨 것이다. 주교는 어떤 음식도 소화하지 못했다. 비교적 잘 먹던 우유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위가 탈이 나서인지 무엇이든 먹기만 하면 토했다.

오호 마을에서 이틀간 몸을 추스른 브뤼기에르 주교는 10월 10일 병약한 몸으로 다시 길을 나섰다. 15일 나마묘(喇廟) 마을에서 하루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걸어 19일에 신자 300여 명이 살고 있던 교우촌인 마가자(馬架子)에 도착했다. 마가자는 오늘날 중국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 동산향이다.

브뤼기에르 주교 일행은 산서대목구장이 파견한 길 안내인 장희가 마가자 사람이어서 그의 친척(또는 부모) 집에 머물렀다. 주교는 이 집에서 보름 정도 묵으면서 기력을 회복할 계획이었다. 집 주인은 주교가 묵을 방을 덥혔고 죽을 준비했다. 주교는 식사를 하고 중국인 고 신부와 담소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날 주교는 음식을 토하지도 않고 별 고통 없이 잠도 잘 잤다.

다음날인 10월 20일 브뤼기에르 주교는 오전 중에 독서를 하고 고 신부와 대화도 했다. 이 모습을 보고 다들 주교의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안심했다. 주교는 저녁 식사를 한 후 중국 예법대로 잠시 누워 있다가 일어나 더운물로 발을 씻은 후 신자 면도사를 불러 면도도 했다. 그리고 변발을 다 땋아갈 때 갑자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울부짖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어 침상에 쓰러져 프랑스말로 “예수 마리아 요셉”을 찾았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함께 있던 고 신부가 부축했으나 브뤼기에르 주교는 이후 한 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하느님 뜻 이뤄지길…

고 신부는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급히 병자성사를 주고 전대사를 베푼 다음 옆에서 임종을 돕는 기도를 바쳤다. 한 시간 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5년 10월 20일 저녁 8시 15분 조선 선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선종했다. 주교는 생전에 “나는 외지 타타르에서 죽을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따름이다”고 말했는데 그 말처럼 타타르 땅 내몽골에서 운명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종 소식은 서만자에 있던 모방 신부와 산서대목구장에게 곧장 알려졌다. 모방 신부는 11월 17일쯤 마가자에 도착했다. 다음날 모방 신부는 고 신부와 함께 주교의 시신이 모셔진 곳에 가서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했다. 19일에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참여한 가운데 모방 신부가 브뤼기에르 주교를 위한 위령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후 그는 주민들의 안내로 마을 공동묘지로 가서 브뤼기에르 주교가 묻힐 장소를 둘러봤다. 주교의 묘지 터는 신자들의 묘역 중앙에 자리하고 언덕 남향 기슭에 있었다. 장희가 이 땅의 주인이었다.

20일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신은 장희가 소유하고 있는 소성당으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 브뤼기에르 주교의 장례 미사가 봉헌됐다. 마가자와 인근에 사는 모든 신자가 참여한 가운데 연도를 시작으로 미사 전 예식, 장례 미사, 고별식, 매장 순으로 장례 예식이 장엄하게 거행됐다.

장례 예식을 주례한 모방 신부는 장희와 그의 친척들에게 브뤼기에르 주교의 묘소 옆에 비석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고 그 묘비에 브뤼기에르 주교의 중국식 성인 ‘소’(蘇)자를 새기게 했다. 그는 또 교회에 위험이 되지 않으면 주교의 직책과 나이, 사망 일시를 새겨 달라고 부탁하고 조선을 향해 길을 떠났다.


조선 선교의 밀알을 자청했던 브뤼기에르

장희를 비롯한 마가자 신자들은 모방 신부의 뜻에 따라 브뤼기에르 주교의 묘소에 비석을 세웠다. 묘비에는 ‘탁수(鐸首) 소공지묘(蘇公之墓) 도광 15년 8월 29일립(道光十五年八月二十九日立)’이라는 글을 음각했다.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무덤. 1835년 8월 29일(양력 10월 20일)에 선종하다”는 뜻이다.

조선 복음화를 위해 기꺼이 썩어 없어질 밀알이 되길 자청했던 브뤼기에르 주교. 그는 길 위에서 목숨을 잃은 무력한 인간이 아니라 스승 예수의 십자가 수난에 동참한 그리스도의 증거자다. “나는 내 계획에 맞서게 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어려움에 대해 조금도 환상을 품지 않았다. 나는 그 모든 어려움을 예상했던 것 같다. 그보다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리라는 사실마저 납득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길고 지루하며 고통스러운 여행에서 당했던 온갖 방해들에 대해서 나는 조금도 놀라거나 기가 죽지 않았다. … 우리가 조선 사람들을 만나러 나서지 않는다면, 그들은 절대로 우리를 맞이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서는 가서 그들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브뤼기에르 주교 「여행기」에서)


용산 성직자 묘역에서

중국 복건성 복안에서 출발해 절강성 항주와 소주, 하북성 헌현, 산서성 기현, 안문관, 대동, 하북성 고가영, 서만자, 내몽고 마가자에 이르는 4500여㎞의 브뤼기에르 주교 조선 입국로 탐사기를 마친다. 탈고에 앞서 서울 용산 성직자 묘역에 안장된 브뤼기에르 주교를 다시 찾았다. 이 연재를 시작할 때도 이 자리에 섰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는 1931년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 때 이곳으로 이장됐다. 무덤 앞에 서 있자니 처음 마가자의 브뤼기에르 주교 원무덤을 찾았을 때 염수의(서울대교구 용산본당 주임) 신부가 크게 외친 외마디가 떠올랐다. “야훼 이레!"

그랬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을 위해 스스로 마련해 주신 번제물, 바로 당신의 흠 없는 속죄양이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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