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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순교자들] (23) 송은철 파트리치오 인쇄하기
이름 관리자
2017-09-07 15:36:40 | 조회 : 358

가톨릭평화신문 2017. 09. 10발행 [1431호]



[평양의 순교자들] (23) 송은철(파트리치오)


짧은 생애에도 뜨겁게 신앙 증거한 두 소년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 중 나이 어린 10대 순교자는 그리 많지 않다. 손에 꼽을 정도다. 103위 중에는 14세에 순교한 유대철(베드로) 성인 등 4위, 124위 중에는 12세를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봉금(아나스타시아) 복자가 있을 뿐이다. 근ㆍ현대 신앙의 증인 81위 가운데는 평양교구 출신으로 각각 17세, 16세에 순교한 송은철(파트리치오)과 김운삼(요셉)이 10대 순교자로 시복이 추진되고 있다. 신학교에 갈 기회만 기다리던 송은철, 복사로 있으면서 신학교에 입학하고자 노력했던 김운삼은 평양대목구장 홍용호(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함께 피랍돼 평양 인민 교화소에 갇혔고 그 뒤로는 생사를 알 길이 없다.



늘 성당 마당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송은철은 1933년 5월 18일 평양 상수구리(현 평양직할시 중구역 만수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양 보통학교 교사였던 송성화, 어머니는 성모학교 교사였던 정석인(아녜스)이었다. 본래는 남매였으나 누나가 일찍 죽어 독자가 됐고, 어머니가 1940년에 폐결핵으로 사망, 한약방을 하던 외조부모 슬하에서 성장했다. 말수가 적었고 둥근 얼굴의 미남형이었다.
 

평양에서 공립보통학교를 나온 그는 평양제2중학교에 진학한다. 해방 뒤 평양고등보통학교(평양고보)에서 학교 이름을 바꾼 학교였다. 영어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어에 관심을 보였지만, 해방 이후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러시아어가 채택되고 영어 교육이 금지되자 개인지도를 받아가며 영어 공부를 했다. 특히 메리놀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관후리 주교좌본당 학생들이 은밀히 영어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교우 학생들과 어울리게 됐다. 외가 또한 관후리본당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상수구리 모원 아래 동네에 있었기에 그는 늘 성당 마당에서 놀았고, 대성전 건축 현장 일도 많이 했다. 같이 피랍된 김운삼도 함께 놀고 일하던 친구였다. 관후리본당 보좌 서운석 신부와 친하게 지내던 송은철은 평소 기림리(현 평양시 사동구역 금탄리) 주교관에서 홍 주교와 비서 최항준 신부의 잔심부름을 거들며 신학교에 갈 기회를 기다렸다.
 

 

회유와 협박에도 흔들림 없어
 

하지만 1949년으로 접어들면서 천주교회에 대한 박해가 갈수록 심해졌다. 송은철도 복사를 하던 다른 학생들과 주교관에서 숙식하며 홍 주교를 지키려 했다.
 

1949년 5월 14일, 홍 주교가 서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수녀원에 첫 종신 서원자 면담을 하러 가 있던 중 북한 내무상 박일우가 홍 주교에게 면담을 청해온다. 이에 평양대목구 부감목(현 총대리) 김필현 신부는 김운삼을 통해 홍 주교에게 면담 요청 소식을 전한다. 이에 송은철은 홍 주교와 김운삼을 지키기 위해 자전거를 탄 채 주교관에서 키우던 개를 끌고 서포 수녀원으로 간다. 이어 홍 주교와 함께 평양으로 돌아오던 송은철은 가루게(감흥리, 현 평양시 모란봉구역 진흥동) 갈림길에서 체포됐다. 홍 주교의 부탁으로 김운삼과 함께 잠깐 풀려나기도 했지만, 다시 보위부원들에게 잡혀가 평양 인민 교화소에 수감됐다. 함께 갇혔던 김원우(베드로, 아명 김인국)씨의 증언에 따르면, 송은철은 김운삼과 함께 6개월간 심문을 받았으며, 신앙을 버리면 집으로 보내준다는 회유와 협박에도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교화소에서 혹사를 당했고, 감방 안에서 성호를 긋는 바람에 1949년 11월께 다른 감방으로 옮겨가야 했다. 송은철은 김원우가 갇혔던 감방에 들어왔을 때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아 거의 누워 지냈으며, 따뜻한 옷과 이불도 없이 학생복 차림으로 수감됐기에 감옥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설사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10ㆍ20 평양수복 직전 공산당이 수감자들을 총살해 결국 처형됐을 것으로 보인다.


송은철은

▪1933년 5월 18일 평양 상수구리 태생

▪평양공립보통학교 졸업

▪평양제2중학교 재학

▪1949년 5월 14일 홍용호 주교, 복사 김운삼과 함께 피랍돼 행방불명




오세택 기자 sebasian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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